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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훈육(訓育)

    - 요한 크리스토프 아놀드 - Johann Christoph Arnold

    2012년 05월 04일 금요일

    다른 언어들: español, العربية, Engl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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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아, 아버지의 훈계를 잘 듣고, 어머니의 가르침을 저버리지 말아라. 진정 이것은 머리에 쓸 아름다운 관이요, 너의 목에 걸 목걸이이다. – 잠언 1:8-9

    모든 종류의 훈육이 학대로 여겨지는 시대에 우리는 아이에게 회초리를 들지 않으면 아이의 버릇을 나쁘게 만든다는 이 구약성경의 잠언을 잊어버리고 싶어진다. 물론 나와 우리 모두 육체적인 체벌은 거부하지만, 일반적 의미의 훈육을 말하는 이 성경 구절에서 여전히 지혜를 얻을 수 있다.

    그런데 만약 어떤 아이가 양심에 찔리는 일을 저지르고도 제재를 받지 않는다면 그 아이는 잘못된 교훈을 얻게 된다. 특별히 아이가 어렸을 때 저지르는 나쁜 행동은 그것만으로는 작게 보일 수 있지만, 만약 그때 아이가 제재를 받지 않는다면 미래에 훨씬 더 나쁜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 부모의 옷장에서 동전 한 움큼을 훔치고도 훈육을 받지 않은 여섯 살 아이는 열여섯 살에는 좀도둑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훈육은 단순히 아이의 잘못된 행동을 지적하거나, 어른 뜻대로 아이의 의지를 꺾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훈육은 아이가 잘못된 것을 판단하고 옳은 길을 선택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것을 의미한다. 자기부정(self-denial)이야말로 오래되고 낡은 도덕이 아니라, 값진 인격의 특성이라고 훈육은 가르친다.

    효과적인 훈육은 아이가 아주 어릴 때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아기는 태어난 지 몇 달밖에 안 돼서 벌써 자기가 울면 부모가 주의를 기울이고 걱정한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아이들이 울 때마다 반응하는 엄마는 이미 싸움에서 진 거나 다름없다. 아기를 달래주어야 하는 건 당연하지만, 아기가 울 때마다 안아줄 필요는 없다. 아이가 아주 어렸을 때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것을 배우지 못한다면 언제 배울 수 있겠는가?

    아이에게 일관된 태도를 보이고, 끊임없이 아이의 의지에 맞서는 일은 종종 힘들 때가 있다. 그러나 훈육하기 위해 노력하기보다 편하게 넘어가기를 더 좋은 일로 여기는 부모는 뒤에 가서 아이가 점점 더 큰 골칫거리가 된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아이는 모두 처음에는 저항하지만, 결국에는 익숙해져서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자랄 것이다.

    어떻게 아이를 훈육해야 할까? 아이의 작은 부주의한 행동을 끊임없이 꾸짖고, 트집을 잡으면 조급함과 화만 부추기고, 끝에 가서는 부모와 아이 모두 서로에게 고함만 지르게 된다. 마찬가지로 자기가 하는 모든 행동에 대해 설명하고 이유를 대는 부모는 결국 지치고, 자신감을 잃게 된다.

    오히려 부모는 말보다는 행동을 선택해야 한다. 가장 간단한 훈육 방법의 하나는 버릇없는 행동을 한 아이를 다른 방에 보내서 몇 분 동안 있게 하는 "조용한 시간(time out)" 주기이다. 이런 방식으로 벌을 받은 아이는 곧 지루해하거나 외로워져서 다시 돌아와 놀고 싶어한다. 아이가 조용해지면 그 일에 대해서는 용서하고 아이가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러나 신체적 처벌은 절대 안 된다. 교육자였던 나의 할아버지는 체벌을 "도덕적으로 파산했음을 선언하는 행위"라고 말씀하셨고, 체벌은 해로울 뿐만 아니라 효과가 없다고 말씀하셨다. 사랑이 함께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강한 훈육도 아무런 효과가 없기 때문이다. 아이를 따뜻하고 친절하게 대하고, 존중하지 않는 모든 형태의 훈육은 지금이 아니라도 나중에 꼭 반항을 불러일으킨다.

    따라서 바람직한 훈육은 부모와 아이 사이의 신뢰에 달려있다. 감사하게도 나와 누이들은 부모님과 그런 신뢰를 맺었다. 한 번은 내가 여덟 살 때 아버지를 너무나 화나게 해서 아버지는 내게 아주 엄한 벌을 주기로 하셨다. 아버지가 막 내 엉덩이를 때리시려고 할 때 나는 그분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아빠, 미안해요. 하시고 싶은 대로 하세요. 그래도 여전히 절 사랑하시는 걸 알아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놀랍게도 아버지는 몸을 숙여 나를 안으시며 "아들아, 널 용서한다."라고 말씀하셨다. 나의 말이 아버지를 완전히 무장해제시킨 거다. 이 일은 내게 절대 잊지 못할 교훈을 알려줬다. "자신의 아이를 훈육하기를 두려워하지 마라. 그러나 아이가 자기가 한 일을 뉘우치는 걸 부모가 느끼면 주저하지 말고 꼭 용서하라."

    일관성 또한 훈육의 중요한 열쇠다. 부부가 아이 교육에 관한 얘기를 나눌 때 서로 다른 의견을 갖고 있다면 아이 앞에서 논쟁하는 일은 삼가라. 그러지 않으면 아이는 금방 부모 사이를 갈라놓는 방법을 터득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거실에 손님이 가득 있다고 해서 아이에 대한 당신의 교육 방법을 바꿔서는 안 된다. 마음을 굳게 먹고 부모로서 해야 할 일을 하라. 어찌 됐건 손님들이 간 다음에 여전히 아이의 문제를 다뤄야 하고, 당신이 아이와 맺는 장기적인 관계는 당장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좋은 인상보다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부모는 아이가 자신의 모든 명령에 아무 생각 없이 무조건 순종하기를 바랄 수는 없다. 어떤 일은 설명을 해 주어야 한다. 보통, 아이는 순종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만약 아이와 충돌하게 되면 부모가 꼭 이겨야 한다. 아이가 아닌 부모가 경계선을 긋는 게 중요하다. 만약 부모가 사랑으로 그 경계선을 한결같이 적용하면 아이는 바로 아니면 언젠가는 자신을 위해 경계선을 그을 줄 알게 된다.

    얼마나 자주 아이를 훈육해야 하는지 상관없이, 아이에게 굴욕감을 주어서는 절대 안 된다. 아이의 약점이나 실수를 다른 어른 앞에서 말해서는 안 되고, 자신의 아이를 다른 아이와 비교해서는 절대 안 된다. 한 아이에게 "다루기 어렵다."라는 딱지를 붙이기 쉬운데, 그것은 절대 옳지도, 공정하지도 않은 일이다. 아이처럼 우리도 지난 일을 용서해야 할 뿐만 아니라, 잊어버리고, 매일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잠언 19장 18절에 아주 웅변적으로 표현된 훈육의 긍정적인 목표를 믿어야 한다. "네 아들을 훈계하여라. 그래야 희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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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은이 JohannChristophArnold 요한 크리스토프 아놀드

    저자는 결혼, 부모역할, 교육, 노년 등을 주제로 활발한 저작, 강연 활동을 했으며, 기독교 공동체 브루더호프에서 목사로 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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